타인에 관하여
원칙은 바뀔 수 있음이 원칙이다.
Introduction :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타인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세상을 보더라도, 우리는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생각한다.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하며 실망하지 않고, 내가 감히 알 수 없는 감정의 크기를 함부로 재지 않고, 온전히 존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앎에서 시작한다.
상대를 예단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조금 타인을 덜 신경써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니, 최소한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도리를 지키며 그 외적인 것들은 조금 더 마음 편하게 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서로를 온전히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알아가려는 노력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타인에 대하여,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한다.
함께 사는 세상
주변의 누군가에게 따스함을 느끼는 경험을 많이 하는 요즈음이다. 나의 행복은 나의 안녕에서 비롯하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관심과 웃음이, 세심한 배려가, 공유하는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행복을 경험하니, 나 또한 이런 따뜻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기 부담일 수 있는 것들은 먼저 묻지 않는 것,
상대가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화두로 올리지 않는 것,
누군가가 사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
먼저 밝게 인사하고 안부을 묻는 것,
친구의 연락에 답장을 미루지 않고 좋아함을 표현하는 것,
고마운 일에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것,
상대가 ‘갚아야겠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선을 넘지 않으며 은은하게 배려하는 것.
상대방이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상상하는 과정이 내게도 행복을 줌을 알았다.
그러나 배려는 ‘상대방은 이럴 거야’라고 생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타자성에 반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래의 것들을 더욱 주의하고자 한다.
1. 배려의 목적은 상대의 안녕이다.
세심한 누군가에게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길 바라며 배려를 행하는 것은, 자기포장에 불과하다. 나를 포장하는 일도 분명 때때로 필요하며, 나를 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고려하게 되는 순간, 상대의 안녕보다는 보이는 나의 모습이 더 중요해지며 본래의 가치를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게 되더라.
또한, 나의 배려는 오직 나의 판단에서 비롯했기에, 상대에게는 고마워할 의무도 비슷한 배려를 해야 할 책임도 없다. 오히려 나의 배려가 상대에게 부담이 되었거나, 예상하지 못한 안좋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하는 책임은 나에게 있다. 상대방이 고마워하고 알아주길 바라며 행하는 행동은 나도, 상대도 힘들게 만들 뿐이다.
나의 행동으로 누군가가 안녕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원래의 목적을 잃은 배려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다.
2. 모든 것에 앞서서, 나를 잃지 말아야 한다.
나를 잃으면서까지 누군가를 배려한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내어준 것이 크게 보이기 마련이다. 대가 없이 상대의 안녕을 바랄 수 있는 예쁜 마음은, 내가 줄 수 있는 단단함을 갖추었을 때 생기더라.
다른 사람을 안을 수 있는 품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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