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


원칙은 바뀔 수 있음이 원칙이다.

Introduction :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

가만히 있는 것은 실로 매력적인 선택지이다. 오죽하면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말라’라는 이야기가 나왔겠는가.

나의 ‘가만히 있지 않음’에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관여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은 더 많아진다.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는 모호한 세상에서, 나의 선이 누군가에게는 악이 될 수 있으며 내가 가벼이 여긴 타인의 이야기가 당사자에게는 다른 무게와 깊이일 수 있다.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 시점의 나의 일부를 타인에게 표현하는 일이기에 누군가는 그 일부로써 나를 정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많은 머리아픈 일들을 감수하며 말하고 행동할 때, 세상은 움직이고 관계는 변화한다.


반은 가겠지만, 가는 방향을 바꿀 수 없다.

가만히 있음은 멈춤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잠깐 사이에도 지구가 도는 속도로 돌고 있는 것처럼, 세상의 많은 흐름들에 속하는 우리는 그 흐름대로 끊임없이 가는 중이다.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주변인들과 관계를 맺고 마음을 나누기에, 집단 속에서 가만히 집단의 방향대로 흐르는 것은 더욱 안정적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흐름의 키를 잡고 있겠지, 맞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안일한 안주였음은 보통 무작정 흐르다 도착한 벼랑의 끝에서 드러난다.

집단의 방향을 바꾸는 것에는 세 번의 큰 노력이 필요하다. 당장의 안정감에서 벗어나 ‘이 방향이 맞아?’라는 의구심을 가지는 것에 한 번, 또 이 의구심을 대책과 함께 세심하게 제시하는 것에 한 번, 마지막으로 내가 바꾼 방향이 향하는 곳을 끝까지 살피는 것에 한 번.

모든 과정이 쉽지 않지만, 특히 세번째 과정이 수반하는 책임감이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였다.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은, 때로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대신 아예 집단에 속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함은 곧, 생각하지 못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건강한 토의가 서로의 불완전한 생각을 보완한다.

소중한 내 주변인이 나의 서툶을 보듬어줄 이들임을 신뢰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가만히 있지 않고 ‘이 방향이 맞아?’라고 용기내어 말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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