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함의 역할
원칙은 바뀔 수 있음이 원칙이다.
Introduction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흥미를 느낀다.
따라서 타인이 나를 주목하게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수와 다른 무언가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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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말할 때 말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무도 말하지 못할 때 목소리를 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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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일에 사력을 다하는 것, 그리고 모두가 목매는 일을 가벼이 넘겨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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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항상 일찍 출근하는 것. 발표에서 아무도 갖지 않은 의문을 유려히 제시하는 것. 확고한 입맛과 취향이 있는 것.
희소함은 ‘나’라는 존재를 타인에게 어필하는 좋은 도구이다. 이 새로움에 일관적으로 나의 색이 드러날 때, ‘나’는 ‘관종’이 아닌 ‘특별한 사람’으로 인지된다. 타인이 나에게 귀를 기울인다.
내가 타인과 다름을 인지할 때, 나의 특별함이 주는 자기만족의 크기는 꽤나 크다. 또한 일반적으로 타인이 하지 않는 일은 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희소함은 성취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희소함이 내 행동의 내적 동기가 될 수 있는가?
Rationale
Rationale : a set of reasons or a logical basis for a course of action or a particular belief.
좋은 논문의 서론에서 저자는 ‘이 연구가 왜 novel한지’와 더불어, ‘이 연구가 왜 합당한지’를 이야기한다.
아무도 해보지 않았음은 곧, 검증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published된 연구가 없음은, ‘아무도 해보지 않았음’이 아니라 ‘해본 모두가 실패했음’의 가능성도 내재한다.
나의 시도가 기존의 시도들에 비해 뚜렷하게 갖는 이점, 혹은 이점을 기대할만한 논리적 근거가 존재하여 스스로가 설득되었을 때 연구자는 확신을 갖고 어떤 어려움도 밀고 나갈 수 있다.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마주했을 때 동력을 잃지 않고 문제를 분석할 수 있다.
실패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연구일수록, rationale을 찾는 시도는 불가결하다.
희소함의 역할
연구와 삶의 다른 점은, 타인과의 감정적 상호작용이 관여한다는 것이다. 이는 희소함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고민거리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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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내가 제시한 새로운 가설이 검증의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타인에게 관철될 수 있다. 제안하는 사람의 사람됨, 표현 방식, 명성, 지위 등이 주는 인상은, 비판적 검토 없이 ‘어련히 저 사람의 주장이 맞겠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신뢰받는 사람일수록, 집단의 다수는 그 사람이 던진 낯선 주장을 무서울 정도로 수용적으로 받아들인다. 영향력 있는 사람의 근거 없는 주장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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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다름은 빠르게 관철될 수 있는 만큼, 역설적으로 너무 쉽게 틀림으로 변질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맞겠거니’의 방식으로 쌓아올린 믿음은 아슬아슬하게 쌓은 높은 탑과 같아 약간의 균열만으로 쉽게 무너진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함이 주는 아픔은 크다. 더욱이 나의 희소한 행동이 타인을 의식하여 만들어졌다면, 집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감과 외로움은 나의 희소함을 던져버리고 다수 속에 들어가고자 하는 회귀 본능을 불러 일으킨다. 타인으로부터 정의된 동력은 타인이 달라질 때 너무 쉽게 그 의미를 상실한다.
희소함은 더욱 눈에 띄고 매력적으로 나를 포장하지만, 포장에 관계 없이 그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언젠가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동력은 포장이 아닌 무게가 만든다.
삶의 순간들에서도, 나의 rationale을 찾고자 한다.
희소함이라는 도구는 사용하는 것이지,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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