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솔직함


원칙은 바뀔 수 있음이 원칙이다.

Introduction


“시험 잘 봤어?”라는 질문에,

  • “응, 꽤 잘 봤어.”
  • “아니, 못 봤어.”

를 같은 무드로 망설임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겸손함자기비하, 자신감자랑, 솔직함무례함의 경계는 모호하다.

더욱이 그 경계는 행하는 내가 아닌,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과 맥락에 의해 정의되기도 한다.



인정 욕구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인정받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자랑과 뽐냄 또한 이러한 인정 욕구의 한 형태일 것이다.

타인에게 결핍되지 않은 것, 혹은 타인이 그리 욕망하지 않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인정받기 훨씬 수월하다.

가령 이런 것이다.

종이접기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아주 멋진 작품을 완성했음을 자랑할 때, 우리는 어떤 상처도 받지 않고 그의 노력과 열정, 작품의 멋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나도 가지고 싶은 것’을 자랑하는 다른 이를 바라볼 때, 사람은 본인의 결핍과 마주한다. 인정하기보다는 상처를 받는다.



겸손함이 미덕이 되는 사회


겸손함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인정 욕구는 두 가지 방향으로 고도화되었다.

  1. 내가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정량적인 지표를 갖추는 일: 학벌, 성적, 실적, 자산
  2. 타인의 결핍을 헤집지 않는, ‘선으로 통용되는 성향’을 드러내는 것: 이타심, 책임감, 친절함

정교하게 정제된 인정 욕구는 행위자의 자랑을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기에, 사람들에게 훨씬 더 담백하게 받아들여진다.

위 두 가지를 서툴게 수행하여 1에서 포장이 더해지거나, 2에서 진정성이 결여된 모습이 보일 때 사람들은 종종 분노한다. 은근히 상대를 속이거나 얕보는 것을 의미하는 ‘기만’이라는 용어는 이런 분노를 칭하는 것이리라.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은 마음은 문화와 역사의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타심과 책임감, 친절함을 드러내는 것 역시 그 동기가 인정 욕구이든, 선한 마음이든 무엇이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1) 인정받기 위한 노력과 (2) 나를 가꾸는 일을 동일시하기에는 애매한 지점들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있을 때의 나의 모습은 후자를 통해서만 발전한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이전에 ‘스스로부터의 인정’은 나의 모든 모습을 판대에 올려놓고 이루어진다. 보이는 모습과 ‘나’의 괴리는 나의 결핍과 끊임없이 마주하게 만들며 스스로를 상처 입힌다.



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존재론적인 인정이 주는 힘은 강력하다. 서투름과 모자람도 존재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를 존재론적으로 인정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나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게 한다.

다만 나를 내보이는 과정에서, 혹 타인의 결핍에 손을 대어 그를 상처 입히지는 않을지, 완급 조절에 섬세할 필요가 있다. 배려의 영역이다.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은 사랑과 연민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댓글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