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움(2)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다움에 관한 두번째 글입니다. 같이 고민해 준 Y에게 고맙습니다.
Introduction
사회적 실재(reality)는 설득의 산물이다.
— 피터 L. 버거, 실재의 사회적 구성
설득이란, ‘사람의 믿음, 태도, 의도, 동기 부여,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관계든,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일이든, 비즈니스이든, 우리는 새로운 가치를 타인에게 설득하거나, 나의 무언가가 당신의 가치에 부합함을 설득하며 살아간다.
과학도 다르지 않다.
하나의 시대는 고유한 사고의 질서(헤게모니)를 공유하고, 새로운 지식은 그 질서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이 글은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사람다움에 관한 이야기다.
1. 인격적 지식
당신의 분야를 애정하시는 교수님의 강의를 주의깊게 들으면, 수업 전반에 흐르는 교수님의 시각이 느껴진다.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방식으로 연결는지에 대한 수업의 서사(narrative)가 보인다.
신장을 전공하신 교수님은, 과민반응을 신장의 관점에서 풀어내신다. B-cell을 전공하시는 교수님은 면역의 유연성에, T-cell을 전공하시는 교수님은 면역의 정확성에 감탄하신다. 서사의 정교함과 일관성이 갖는 설득력은 듣는 이가 빠져들게 만든다.
방대한 사람의 표현을 광범위하게 학습하는 언어모델에서는 수많은 개인의 인격적 지식이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모여져 학습된다. 여러 층위로 합쳐진 일관적이지 않은 서사 - 가령 코딩의 방식, 말의 어투, 합의되지 않은 관점들에 대해 모델은 당연스레 혼란하다. 더 많고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모델은 상향 ‘평준화’된다.(데이터의 질에 따라 상향이 아닐 수도 있다.) 신념이 보존되지 않은 지식은, 관념의 파편의 총합에 불과하다.
모델을 학습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그 위에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사람은 데이터를 선별하고 보상함수를 설계한다. 사용자의 피드백을 통해 에이전트는 가치를 학습한다. 프롬프트는 파편적인 관념들을 연결하여 방향성을 만든다.
설득의 내용 속에서 드러나는 사람다움이다.
2. Ethos
수사학의 세 가지 요소에는 Ethos, Logos, Pathos가 있다.
Logos는 논리이고, Pathos는 감정이다. Ethos는 화자의 진정성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 가지 중에서도 Ethos를 가장 중요한 설득의 요소로 보았다.
Ethos : the set of beliefs, ideas, etc. about the social behaviour and relationships of a person or group (cambridge dictionary)
개인이 내면화한 기질을 의미하는 ethos는 ‘화자가 얼마나 신뢰성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진정성 없는 말은 아무리 논리적이어도 마음에 남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logos와 pathos를 향상할 때 압도적으로 탁월하다. 논리를 정교하게 구성하고, 감정의 패턴을 학습하여 재현한다.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제안에 맞게 가공하는 일은 더이상 사람의 일이 아니다. 자기강화적인 과정로 개선과정이 자동화된다면 이러한 지능의 비용은, -샘알트먼의 표현을 빌리자면-전기를 사용하는 비용에 가깝게 수렴할 것이다.
그러나 Ethos, 즉 내면의 일관성과 축적된 태도에서 비롯된 진정성은 데이터로 학습되지 않는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McKinsey)다. 맥킨지는 한 세기 가까이 ‘조언의 신뢰’를 상징해왔다. 회사는 AI를 대체자가 혹은 경쟁자가 아닌 catalysit for innovation로 정의하며, 적극적으로 워크플로우를 재설계하고 있다. 누구나 gpt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그들의 조언이 여전히 가치를 갖는 이유는 회사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 즉 오랜 시간 축적된 Ethos 때문이다.
무엇을 묻고,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에 대한 기준은 기업의 철학으로 만들어진다. 회사는 그 철학으로 사람을 설득한다.
설득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사람다움이다.
Outro
설득 : 모호함의 자원을 예술적으로 사용하는 것
— 케네스 버크
방향을 정하는 일,
가치의 우선순위를 세우는 일,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일
– 설득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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